|
조카인 아름이(가명)가 실업계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은 지난 15일이었다. 어차피 대학을 포기했던 아름이는 애초에 기술 전문학교를 다니려 마음먹었었다. 졸업 전에 학교로 모 항공 전문학교라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 입학설명회를 가졌던 것이 계기였다.
한 학기 300만원이 넘는 수업료를 먼저 내고 학원을 다니다가 해군 부사관에 지원을 하면 국비 장학생이 된다는 말이, 아름이에겐 너무도 달콤하게 들렸다고 한다. 먼저 낸 수업료도 돌려받고 졸업 때까지 무료로 학원을 다닐 수 있는 것은 물론, 천만원의 장학금까지 받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군에 입대를 하면 월 15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름이 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도 꿈에 젖게 했다. 취직이 힘든 요즘 세상에 군 공무원 신분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아름이와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신청서를 써냈다. 하지만 그 '단 꿈'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갓 진출한 사회, 그러나 도처에 깔린 삶의 장애물
졸업하자마자 학원 측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전화를 해서 달콤한 말만을 해대며 빨리 입학 수속을 하라고 보채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아름이를 보고 궁금했던 나는 해군에 직접 연락을 했다.
“저희 해군에서는 여자 부사관을 위한 그런 장학제도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잘못 전해졌거나, 그 학원이라는 곳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해 군 부사관 담당이라는 소령의 확실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다시 항공 전문학교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 이야기는 한결같이 장밋빛이었다. "해군 측에 알아보니 당신들 말과는 전혀 다르더라"고 하자, 학원 측 사람이 말을 더듬으며 전화를 끊었고, 아름이에게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제야 사태를 알아차린 아름이는 얼른 친구들과 학교에 연락을 해서 사기성이 농후한 그 학원에 대해 알렸다. 아름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어찌해야 좋을지 딱히 알 수도 없어 그냥 분을 삭이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동 생과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홀어머니를 생각해서도 취직은 시급했지만, 실업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름이 앞에 문을 열어주는 회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학교 때부터 밤에 네시간 씩 시장에서 옷 판매원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름이는 하는 수 없이 경력을 살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구인 광고를 보고 여러 군데 자기 소개서를 올려놓자 며칠 후에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백화점의 여성정장 코너라는 곳으로 당장 달려가 면접을 본 아름이는 다행히 그날로 채용이 결정되었다.
아 르바이트 하던 곳의 사장 언니 소개서가 힘을 발휘한 덕에 보수도 마음에 들게 책정되었다. 단지 판매원 특성상 근무시간이 조금 길긴 하지만 생각보다 넉넉한 보수이기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곳을 한 일주일 째 다니고 있는 아름이에게 물었다.
“직장 생활은 마음에 드니? 혹시 힘들지는 않고?”
“ 조금 힘들긴 하지만, 어엿한 일자리를 가졌으니 자부심이 느껴져요. 내 친구들은 그 힘든 곳에 뭐 하러 들어갔느냐고 말 하지만, 내 입맛에 맞는 일자리가 어디 그리 쉽나요? 더구나 제가 어디 가서 이만한 월급을 받을 수 있겠어요?”
"취직대란,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하 긴 요즘 세상에 실업고를 갓 졸업하자마자 1백수십만원의 보수를 받는 일자리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라고 해서 모두가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힘든 데다가 자기 시간이 거의 없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아름이가 말했다.
“ 취직 대란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자기 일 하고 싶은 자리만 찾으려면 취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빨리 일하고 싶었거든요. 놀면 뭐해요. 엄마를 도와드려야죠. 조금 힘들긴 해도 지금 일자리 만족해요. 같이 일하는 언니들도 잘해주고요. 어쨌든 열심히 돈 벌어서 저도 언젠간 옷 가게 사장하려고 그래요. 정말 열심히 해볼 거예요.” |